수영농청놀이 구성과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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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농청놀이는 농번기 농촌 공동체의 협동과 흥을 담은 전통 농사놀이로, 농악대의 흥겨운 장단에 맞춰 풀베기, 가래질, 모찌기, 모심기, 김매기, 도리깨타작, 소싸움 등을 재현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풀노래
영각수의 집합 신호에 따라 농악대가 잠시 동안 '캥자 캥자 캥자 캐캥' 4장단에 맞추어 흥겹게 농악을 울린다.
이 사이에 남녀 농청원들은 놀이마당의 입구에 행렬을 지어 선다. 행렬의 맨 앞에는 동,서부 농청기, 농기 등을 앞세우고 영각, 호적, 꽹과리, 징, 장고, 북 등을 각각 1개씩 든 농악대가 그 뒤에 선다. 그러나 호적은 원래의 농청 농악에는 없었던 것이 뒤에 첨가된 듯 하다.
이어 정자관을 쓴 양반이 삭가래를 들고 따르고 그 뒤에는 검정소를 모는 소몰이, 쟁기(훌찡이)를 지게에 진 농부, 누렁소를 모는 소몰이, 써레를 지게에 진 농부 등의 순으로 벌여 선다. 그 뒤로는 가래를 어깨에 짊어진 목가래꾼과 줄가래꾼(쫑가래꾼)들이 따르는데 가래는 모두 4개이다. 가래 1개 당 목가래꾼 1명, 줄가래꾼 2명 등 3명씩 붙어 가래꾼의 총 인원수는 도합 12명이 되는 셈이다.
농청원들의 뒤에는 내방청원인 부인들이 뒤따른다. 이들은 모두 15~16명 정도인데 이 가운데는 술동이를 이고 있는 사람과 함지박(찬반팅이)을 이고 있는 사람이 각각 한사람씩 포함된다. 함지박을 이고 있는 사람 옆에는 6~7세 되는 여자아이가 누덕누덕 기운 검은 치마와 흰 저고리를 입고 따른다. 그리고, 행렬의 맨 끝 부분에는 도리깨, 풍석, 자루바가지(자래바가치), 대빗자루, 갈쿠리, 밀개, 대소쿠리, 키(챙이) 등 여러 가지 농기구를 바지게에 짊어진 농청원 한 사람이 뒤따른다.
이렇게 정렬을 한 후 일동이 모든 동작을 멈춘 채 서 있는 동안 농악소리가 그치면 먼저 풀베기소리를 부른다.

가래소리
풀베기 소리를 다 부르고 나면 남녀 농청원들은 모두 앞에서 기술한 행렬의 순에 따라 '캥자 캥자 캥자 케갱' 식으로 치는 4장단 농악 가락에 맞추어 춤을 추며 입장한다. 춤은 왼팔과 오른팔을 번갈아가며 오무렸다 폈다 하는 식으로 추는 단순한 동작이다.
행렬이 일단 놀이마당 중앙으로 들어오면 내방청원들은 모두 퇴장하고 남자 농청원들은 일을 시작한다. 소 두 마리를 가지고 한쪽은 논갈이, 한쪽은 써레질을 한다. 그 주위에서는 가래 4개를 가지고 가래꾼들이 빙 둘러서서 가래질을 하며 가래소리를 부른다.
농촌에서 가래소리를 부르는 경우는 대개 토역 작업과 관련되어 있다. 즉, 제방 모으기, 논 다듬기, 모의 봉분 모으기 등 흙을 다루어야 하는 일과 관계되어 있다. 수영농청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음력 2월 초순이 되면 얼음이 녹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논도 갈고 지난 해의 폭우 등으로 인해 터진 논둑과 봇도랑을 다시 고친다. 이때는 여러 사람이 동원되어야 하는 수가 많았으므로 대개는 농청에 부쳐서 토역을 했는데 가래소리는 이럴 때 불렀던 것이다. 또, 모를 심기 위해서 논바닥을 다듬을 때도 가래질을 하는 수가 있었다. 현재 수영농청 농요에서 재현하고 있는 것은 논 다듬을 때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모찌기소리
내방청원들은 흰 치마저고리를 차려 입고 머리에는 수건을 쓴다. 일을 하는 동안 치마가 거추장스럽기도 하지만 물 논에 들어가기 때문에 치마를 양 무릎께까지 걷어 올려 짚으로 묶는다. 이것을 '쫑다님한다'고 한다. 등에는 우장의 일종인 잡사리를 걸친다.
무명 중의 적삼에 우장을 걸치고 머리를 수건으로 질끈 동인 남자 농청원들은 내방청원들이 모를 찌는 동안 바지게에다 모춤을 얹어 져다 나르고 이것을 논(놀이마당)의 여기저기에다 적당한 간격으로 던져 놓는데, 이것을 ‘모 베룬다’고 한다. 한편 다른 농청원 2~3명은 논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세모리를 밟거나 쇠스랑, 삽 등으로 논을 손질하여 편편하게 해 준다. 세모리란 써레질을 하고 나서 흙이 고르게 되지 않고 울퉁불퉁하게 남아 있는 부분을 말한다. 논으로 들어온 내방청원들은 모를 찌면서 모찌기소리를 부른다.
모를 찔 때는 허리가 몹시 아프기 때문에 양 무릎을 쪼그려 엎드리고 작업을 한다. 오른손으로 모를 쪄서 한 움큼이 되면 그것을 왼손에 모으는데 반드시 X자 형으로 포개어 얹어야 한다. 왼손에 모은 모가 5~6 움큼이 되면 옆에 끌고 다니는 짚단에서 짚가락 1~2개를 뽑아내어 묶는다. 이렇게 묶은 한 단을 모춤이라 한다. 남자들은 이것을 끄집어내어 논둑에다 모아 물이 빠지도록 한 뒤에 바지게에다 얹어 모 심을 논에다 운반하여 ‘베루는’ 것이다.

모심기 소리
모찌기가 끝나면 내방청원들은 '캥자 캥자 캥자 캐갱'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며 일단 바깥쪽으로 나오고 그 사이에 남자들은 바지게에다 모춤을 지고 가서 모를 베룬다.
모를 찌던 여자들은 다시 논으로 들어가 모를 쥐고 심기 시작한다. 이때 정자관에다 안경을 끼고 중의 적삼과 조끼를 입은 지주가 나와서 주위를 왔다 갔다 하며 일머리를 틀며 감독을 한다. 등에다 담뱃대를 찌른 채 손에는 삭가래를 쥐고 버선발에다 짚신을 신은 차림새이다.
모를 심는 일은 허리도 아프고 지루한 일이므로 노동의 고통을 잊고 일의 흥을 돋우기 위해 모심기노래를 부른다.
물이 귀해서 모심기가 바빠지면 새벽(식전)동가리, 아적동가리, 저녁동가리 식으로 일을 했다. 즉 아침 식전, 오전, 오후에 각각 한 집씩의 일을 함으로써 하루에 세 집의 모를 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새벽동가리는 일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두 사람의 일을 아적동가리나 저녁동가리 때의 한 사람 일로 처리했다. 일이 더욱 바빠지면 네 것 내 것 구별 없이 같은 들판에 있는 모든 논을 차례대로 심어 나가는 이른바 ‘드름넴기’ 식으로 진행하였다. 일의 순서나 방법은 집강이 결정했다. 집강이 일의 계획을 세울 때는 대개 1인이 하루에 1마지기씩 심는 것으로 계산하였다.
옛날엔 못줄 없이 대충 맞추어 심었는데 이것을 ‘손모’라고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 일인들에 의하여 못줄로 맞추어 심는 ‘줄모’가 시작되었다. ‘손모’는 ‘줄모’에 비하여 좀 촘촘하게 심는 편이었다.

도리깨타작소리
도리깨타작소리는 목도리깨꾼이 앞소리를 메기고 종도리깨꾼들이 뒷소리를 받는 방식, 즉 선후창식으로 부를는데, 일의 강약에 따라 노래의 강약도 조절된다.
일이 덜 격렬할 때는 약하고 느리게 '어화'로 뒷소리를 받는다. 그러나 타작해야 할 보리가 많이 모이면 힘껏 내리치며 힘을 주는데 이때는 '엇쥬'를 연발하여 흥을 돋운다. 일의 박자와 노래의 박자는 정확히 일치하여 일을 능률적으로 수행해간다.
앞소리는 목도리깨꾼이 도래깨질을 하면서 부르는데 ‘때려라’를 부를 경우 ‘때려’를 부를 땐 도리깨를 돌리고 ‘라’를 부르면서 힘껏 내리치는 것이다. 이때 도리깨질을 할 땐 그냥 아래로 내리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쌓인 보릿대를 비스듬히 쳐 펼쳐서 종도리깨꾼들이 치기에 좋도록 해줘야 한다.
보리타작을 하기 위해서 보릿대를 베면 일단 타작마당에 져다가 눕히거나 배긴다. 배긴다고 하는 것은 타작할 보리가 많을 경우 보릿대를 촘촘히 세우듯이 한 방향으로 모으는 것을 말한다. 도리깨꾼이 6명일 경우 2명은 목도리깨꾼, 4명은 종도리깨꾼이 된다. 처음 보리타작을 시작할 때 목도리깨꾼 2명은 종도리깨꾼 4명과 타작할 보릿단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서서 도리깨질을 한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보리알이 대강 털리고 나면 목도리깨꾼 2명은 위치를 옮긴다. 즉, 보릿대를 길게 쌓은 양 옆쪽으로 서는데 보릿대를 밑둥쪽에 서는 이를 ‘핫(下)받이’, 보리알이 붙은 위쪽에 서는 이를 ‘상(上)받이’라 부른다. 이때 핫받이 목도리깨꾼은 특별히 왼손을 잘 쓰는 사람이 선다.
목도리깨꾼은 보릿대를 도리깨로 처 넘겨 주기도 하고 그것이 여의치 않을 땐 찍쇠(도리깨의 꼭지)로 끌어내어 주기도 한다. 이때 목도리깨꾼은 작업의 진행 양상에 따라 여러 가지 앞소리를 불러 작업을 지시하거나 흥을 북돋우어 준다. 물론 종도리깨꾼들은 뒷소리를 받아 준다.

김매기소리
농사일들 중에서 농청이 가장 활발하게 움직였던 것이 논매기였다고 한다.
'초복에 들빛이 한 빛이면 풍년이다' 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초복 무렵이 되면 모가 뿌리를 박아 '살음'을 한다. 동시에 갈, 보풀, 개쪽집이, 골대 등 논지심들도 뿌리를 내리고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때를 기해서 논매기가 시작되는데, 초복 직후에 매는 것을 '아시 논매기', 중복 무렵에 매는 것을 '두벌 논매기', 말복 무렵에 매는 것을 '망시 논매기'라 하여 모두 세 번쯤 매었다.
행수가 농청을 일으키면 집강은 일의 순서를 정하고 그에 따라 수총각이 일을 받아 집행하였다. 어느 집의 논매는 날이 정해지면 농청원들은 아침 식전에 제각기 자기 집의 잔일들, 즉 물꼬보기, 풀베기 등을 처리하고 아침 식사를 한다. 영각수는 새벽부터 영각을 불어 논매는 날임을 알리고 7시쯤이 되면 다시 영각을 불어 농청원들이 모여들기를 재촉한다. 이 소리를 듣고 농청원들은 초당으로 모여든다. 집합이 완료되면 농청기와 영각을 앞세우고 꽹과리, 징, 장고, 북 등으로 농악을 치며 정해진 논으로 간다.
논매기소리는 계속 부르는 것이 아니다. 힘이 들고 고되면 잠시 동안 멈추기도 한다. 특히 아시 논매기 때는 힘이 너무 들기 때문에 소리를 많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두벌 논매기, 망시 논매기 때는 벼도 제법 자랐고 힘도 덜 들기 때문에 흥이 나서 소리도 많이 한다. 이때 논 주인은 술과 밥으로 아침참과 저녁참까지 내어 대접을 잘한다. 특히 망시 논매기 때는 논을 다 맨 후 주인 집으로 가서 한바탕 노는 수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농청기를 꽂아 두고 논을 매고 있으면 벼슬아치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말에서 내려 격려하고야 지나갔었다고 한다.

소 싸움
논매기가 끝나면 동부농청기와 서부농청기를 중심으로 남녀 농청원들이 입장하여 동부와 서부 양편으로 갈라서서 풍물 가락에 따라 빙글빙글 동며 춤을 추며 논다.
이때의 풍물 가락도 역시 '캥자 캥자 캥자 캐갱' 식의 4장단으로 친다. 일동은 이 소리에 맞추어 양 손을 좌우로 벌리고 우쭐대며 자유자재로 뛰고 굴리면서 벙개춤을 춘다.
한참 동안을 이렇게 놀고 있는 사이에 동ㆍ서부에서 각각 소몰이꾼이 노랑소와 검정소(천으로 만든 소 가면 속에 두 사람이 들어가서 연기를 한다.)를 몰고 중앙으로 나온다. 중앙으로 나온 소 두 마리는 서로 어르면서 머리를 맞대고 밀고 밀린다. 이렇게 소싸움을 벌이는 동안 동ㆍ서부의 남녀 농청원들은 함성을 지르며 “우리 소 잘한다”를 연호하고 풍물패는 잦은 가락으로 흥을 돋운다.
동ㆍ서부의 기수들끼리도 서로 밀치며 경쟁에 지지 않으려 안간 힘을 쓴다. 밀고 밀리던 두 마리의 소는 이윽고 서부의 검정소가 밀리기 시작하다가 꼬리를 늘어뜨리고 달아남으로써 승패가 결정된다.

칭칭소리
서부 사람들은 억울하고 분통한 듯 주저앉아 신을 벗어 던지거나 땅을 치며 통곡한다.
한편 동부패들은 신이 나서 춤을 추고 함성을 지르며 주위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서부패들을 일으켜 한 덩어리가 되어 풍물 가락에 맞추어 한참 동안 춤추고 노래하며 논다. 이때 부르는 노래가 칭칭소리이다.
놀이마당 한 옆에는 술동이를 준비해 놓고 관객들과 어울려 막걸리를 주고 받는다. 칭칭소리가 끝나면 일동은 풍물 소리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퇴장함으로써 모든 과정을 마치게 된다. 그러나 공연 시간이 짧을 때에는 칭칭소리를 생각하고 그냥 마치는 경우도 있다.
현재 동부농청과 서부농청으로 편을 나누어 소싸움을 붙이는 것으로 연출하고 있으나 원래는 남문 밖과 북문 밖을 중심으로 남·북농청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조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는 마당에 농청의 명칭마저 남북으로 나누는 것은 좋지 못하다는 중론에 따라 1980년 이후 소싸움과 칭칭소리를 연희 과정에 첨가하면서 동부농청과 서부농청으로 명명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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