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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수영어방놀이 소개

    좌수영어방놀이 역사와 유래

    페이지 정보

    작성자 수영민속협회  

    본문

    좌수영(左水營)이라는 명칭은 조선 선조 25년 이래 현재의 수영동에 경상좌도수군절도사영(慶尙左道水軍節度使營)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현종 11년에 성이 완성되자 성(城)의 전초기지인 포이진(浦二陳)에 어방을 두고 그 어방에 어민들을 집결하여 어업에 집단적인 권장과 진흥을 위하여 어업기술을 지도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좌수영어방(左水營漁坊)인 것이다.



    역사

    역사


    조선시대에는 해상 방어를 위한 수군진이 전국 각지에 설치되었으며, 그중 좌수영(左水營)은 현재의 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위치한 경상좌도 수군의 본영으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좌수영의 수군은 군사적 임무 외에도 평상시에는 어업 활동을 병행하였고, 이로 인해 민간과 군이 협력하여 집단적으로 어로 작업을 수행하는 형태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공동의 노동은 지역 공동체 내에서 중요한 생계 수단이자 협업 구조로 자리잡았다.


    어방놀이라는 명칭에서 ‘어방(漁坊)’은 고기를 잡는 장소나 조직을 의미한다. 좌수영 지역에서는 해마다 봄철 고기잡이 시기가 되면 주민들과 수군이 함께 바다로 나아가 줄낚시, 그물, 작살 등을 이용하여 어획 활동을 벌였다. 이러한 고기잡이 행위는 단순한 생계활동을 넘어서 점차 제의적 성격을 갖게 되었고, 풍어와 마을의 평안을 기원하는 의례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어업 활동은 시간이 흐르면서 공연성과 제의성을 동시에 갖춘 민속놀이로 변화하였다. 고기잡이 동작을 바탕으로 한 퍼포먼스와 북춤, 노동요(어로요) 등의 요소가 결합되어 하나의 집단극 형태로 형성되었고, 이는 단순한 연희를 넘어 마을 공동체의 삶과 문화를 집약한 복합적인 민속문화로 자리잡게 되었다. 좌수영 어방놀이는 군사 조직, 공동 노동, 지역 신앙이 어우러진 상징적인 민속 전통으로 평가된다.


    현재까지도 매년 수영강변과 광안리 해변 등에서 재현되고 있고,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고기잡이 장면, 어로요, 군기 행렬 등을 연출하며, 전통문화의 보존과 전승에 기여하고 있다. 나아가 교육적, 관광적 가치 또한 높게 평가되며 지역 정체성의 상징적 자산으로 지속되고 있다.

    유래

    유래


    1. 좌수영의 역사적 배경

    좌수영(左水營)은 조선시대 삼도수군(삼남 지방 수군)의 본영 중 하나로, 지금의 부산광역시 수영구에 설치된 경상좌도 수군의 본영이었다. 이 지역은 바다와 강(수영강)이 만나는 지형으로, 수군 활동과 함께 어업이 발달해 있었다.

    수군은 외적의 침입을 막는 역할 외에도, 평소에는 어업을 통해 생계를 유지했고, 이는 주민들과의 공동 어로 활동으로 이어졌다.


    2. 어방(漁坊)의 의미와 집단 어로

    ‘어방(漁坊)’은 글자 그대로 고기를 잡는 마을이나 조직을 뜻하며, 좌수영 지역에는 어방을 중심으로 집단어로 체계가 있었다. 고기를 잡기 위해 다수의 인원이 협력해야 했기 때문에, 작업 전 공동 의례를 행하고, 작업 중엔 노래(어로요)로 리듬을 맞추며 고기를 잡았다.

    이 과정을 통해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의 화합을 도모했으며, 점차 이 의례와 노동이 결합된 행위가 놀이 형식으로 발전한 것이 어방놀이의 기원이다.


    3. 전쟁과 노동의 융합

    좌수영 수군은 전시에는 군사력이었지만, 평시에는 어업 노동자이기도 했다. 그래서 어방놀이는 군사적인 질서(줄 맞춰 움직임, 깃발, 나팔 등)과 어업의 재현(그물질, 작살질)이 결합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놀이나 연희가 아니라, 조선시대 수군과 어민의 실제 삶과 공동체 구조를 반영한 민속극이라고 할 수 있다.